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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4. 24世 〉21. <태사공>옥천공휘장훈행장(玉川公諱丈勳行狀)
1. 문헌 목록 〉25. 25世 〉1. <요재공>청당공휘기용묘갈명(靑堂公諱琪瑢墓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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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태사공>송파공휘승환행장(松坡公諱勝煥行狀)
松坡公諱勝煥行狀 公姓趙氏諱勝煥字寬煥松坡堂號也其先玉川氏今之淳昌也高麗光祿大夫檢校大將軍守門下侍中諱璋爲始祖侍中生版圖判書諱洪珪判書生金紫光祿大夫太師特進上柱國檢校門下侍中同平章事諱璵遂族望於國寔顯祖也太師生中門祇侯諱元琦祇侯生. 諱淵八我 太宗朝文科舍人官至吏判生諱膺號伴鷗亭 世宗朝議政府舍人 世祖乙亥投紱南下任邑卜居于食山村遂爲任人即公之十九世祖也累傳諱漢佐隨外氏始居于全州葛田 贈通政大夫再傳諱炳瓘字乃潤號麟山威儀軒昂學問贍富丙寅洋擾募鄉丁擧義諱在鼎字汝重育德不仕諱東俊字奉圭學生寔高曾若祖稱也妣金海金氏德心女公之家自麟山公以來皆以好義周急聞于鄉里公生于辛亥十月二日克嶷克岐自孫孩能知愛敬凡出入門戶與飲食必後於父母至入學不妄言笑自知爲學時則邪説橫行典章文物異於大韓日月癈閭巷私塾而設學校強制入學不學則巳既學則非學校安往己巳入學於農林學校盖敎授半是日入學生亦韓日共學彼挾威勢往往衡突於我公不勝憤慨或以義制之或以力歐打彼以不穩目之日與校友柳琪東野球於殿洞後街有隣兒拾球之際適日警過此躅其革靴衂血淋淋公憤心激昂攫搏倒地無數蹂踐吐盡不平之氣快哉彼謀生逃走雖然豈無後事哉果指摘思想石穩綿拘留於監房左右義之而救鮮焉如是受侮者非一非再竟以辛未卒業該校時年二十一六年富力強辭氣慷慨觀者與憤而至於涕泣公絶意進就内念農業發展以肥我民瘼而營治農場數十外且設學院晝則鉏苗夜則育英以文盲退治爲課業數年之内遠近男女聞風塡門至癸酉十一月彼目之不順集團而竟至解散其後與柳友琦弘設夜學於柿木洞招集靑壯男女培之以義氣敎之以文字漸見斅學之効而與日相長三年餘設運動會於柿洞後山뷑聞頗多洞是伊東面而駐在警察在於德津有洪某者職在巡查突然入場惹起門端卽夜學許可有無也公出班曰貧寒無得進學則晝耕夜讀人之本務而家國之一大勸奘也異域日人亦傍觀而己況汝爲大韓男兒者乎汝今日何面目見我同胞他日何面目對汝祖先於地下乎若汝者眞走狗也如斯數罪俱發洪某語塞裏鼻而去之洪本質惡心慝豈有好事果未半餉以公務妨害拘留一夜而出公自此長歎不辰而渾忘時務農圃隨而蕪焉學生公來公曉之曰農文俱廃重度了歲月後日啗臍悔之莫及而彼怒將發必有莫解之端矣著名於衙門掩蔽一時之耳目無乃汝處世之一策耶命之再三公勉強從命翌年丙子春遂就職于本郡職在農會技手意在於保吾貧民不在乎官祿于時後憑藉東亞戰爭而搾取民間民穀時稱供出數量未達則至於拘打與拘留言必稱非國民云云而強壓全量全出右無虔政而民墜塗炭也此實有内定原數而非上級官僚不知其數也公憂歎之餘得一權謀以甘言交結日人古賀得聞實數暗通於郡内各面長使適當配定實有補於民生矣乙酉轉職於本道農務課甲子事務官丙寅農業敎導課長丁卯書紀官兼農村振興院指導局長己亥三月渡美及日本視察農業技術九月歸國是年十一月復渡美農業講習修了公之在職四十有餘年善行懿蹟難以枚擧其曰農林長官表彰國家元帥勉勵狀及綠條修勳章豈無所以而易得哉壬子十月歌歸去來而退臥松坡此盖公行之大榦也其餘細瑣則外而國政諮問各市郡老人學校創設内而崇祖敦族也配咸陽朴氏父林洙丙辰四月二十七日生貞淑有内助焉所育男馨翼鴻翼容翼在翼和翼孫男 某年某月某日與某年某月某日公與朴氏臯復也某郡某面某里某坐原其窀穸也凡論人論其德非論其文德爲本而文爲末取人取其義不就其位義爲實而位爲虛也天下有文位有餘而德義不足者多爲小丈夫未見德義有餘而文位不足者不爲大丈夫也掎歟壯哉若公者外柔而内剛内華而外夷豈可與隨波沉浮者同日語也哉諺所謂綿中有鐵者今日爲公準備語歟公之胤在翼重厚質直之人也謁余狀德之文辭不獲依家錄叙之如右只愧畵麋鹿而未畵山林之性池以俟夫他日秉筆君子之采擇也 壬戌秋九月重陽節 全州 李亨求 謹撰 송파공휘승환행장(松坡公諱勝煥行狀) 공의 성은 조씨이시고 휘는 승환. 자는 관환. 송파는 당호이시다. 그 옛날은 옥천이였고 지금은 순창이다. 고려광록대부검교 대장군 수문하시중 휘 장(璋)이 시조이시고 시중생판도판서 휘 洪珪(홍규)이시고, 금자광록대부태사특진상주국검교문하시중 평장사 휘(璵)여를 낳으시여, 나라에 뛰어난 가문을 이루셨으니 현조이시다. 태사중문지후 휘 원기(元琦)를 낳으시고 지후 휘 연(淵)을 낳아 아태종조 문과사인으로 있다가 벼슬에 가서는 이판이 되셨는데 휘 응(應)을 낳으시니 호는 반구정이시다. 세종조의정부 사인으로 계시다가 세조 을해년에 벼슬직을 내어놓고 남쪽으로 내려와 임실식산촌에 좋은 땅을 가려 정하시사 드디어 임실사람이 되셨으니 즉, 공의 십구대조이시다. 누대를 전하여 이르셔 휘 한좌(漢佐) 외가를 따라 살았으니 처음으로 전주 갈전에서 거하시니라. 증 통정대부로 임직을 맡으셨으니 휘 병관(炳瓘) 자 내윤. 호는 인산 위 의가 헌걸차게 뛰어나고 학문이 넉넉하셨는데 병인양요때 향정에 모집되여 의로운 기치를 들었으니 휘 재정(在鼎)자는 여중 덕을 길렀으나 벼슬에 나가시지 않았다. 휘 동준(東俊) 자 봉규는 학생이신데 일찍이 높으신 일찍이 높으신 할아버지로 일컬으셨다. 비는 김해 김덕심이시고 공의 집의 가문은 인산공 이래로부터 의로움을 좋아하시고 두루 향리에 명성을 날리셨다. 공을 신해 十月 二日 낳으셨는데 능히 아이때부터 영리하고 기상이 높아서 사랑하고 공경할 줄 알았으며 무릇 들고 난 것과 음식을 먹는데도 반드시 부모님 식사 뒤에 드시고 학교에 입학하여서는 망령되이 말하고 웃지 아니하며 스스로 알아서 배웠는데 그 시대는 사설이 횡행하고 법과 문장 문물이 대한과 달라서 일본 사람이 마을에 서당을 폐하고 학교를 세워 강제로 입학하게 되였는데 배우지 아니하면 그만두겠거니와 이미 배우기를 마음 먹었다면 어찌 학교에 가지 아니하리요. 기사년에 농림학교에 입학하니 대개 교수가 반절이 일본 사람이고 학생 또한 한국사람 일본사람 공학이드라. 일본사람 위세를 내세워 왕왕 공에게 충돌하니 분개해서 혹은 의로써 이를 제지하고 혹은 힘으로써 구타하니 일본사람들이 온당하게 보지 아니하더라. 병자년 봄에 전북 완주군 청에 취직을 하였는데 직책은 노외 기수로써 뜻은 우리 가난한 백성을 보호하는데 있었다. 저들이 동아전쟁을 빙자해서 민간곡식을 착취할 때 예컨대 공출 수량이 미달하면 구타하고 구류에 처하며 언필층 비국민이라고 이르더라. 강합하여 전량을 내니 옛날에 없든 가혹한 정치가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하였다. 이는 진실로 안으로 정해진 원래의 수량이 있어 상급의관료가 아니면 그 수량을 알지 못하드라 공이 이를 걱정하고 탄식한 나머지 한 꾀를 얻었는데 달콤한 말로 고하(古賀)를 사귀어 군내에 암암리 통하는 실수 효를 얻어들어서 각면장으로 하여금 백성의 생계에 도움이 될수 있도록 실제 수량을 배정하였다. 을유년에 본도 농무과로 전직되어 갑자년에 사무관이 되고 병인년에 농업교도과장이 되였고 정묘년에 서기관 겸 농촌진흥원 지도국장이 되고 기해년 三월에 미국과 일본에 건너가서 농업기술을 시찰하고 九월에 귀국하여 이해 十一月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농업강습을 수료하였으니 공의 四十餘年 재직기간에 선행과 큰 자취를 남겼는데 이로써 매번 열거하기가 어려우니 그것을 말하면 농림부장관 표창 국가 원수 면려장 및 록조훈장을 어찌 쉽게 얻을 수 있는 바이겠는가. 임자 十月에 직책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와 송파에 거하니 이는 공의 행장의 큰 줄거리이다. 그 나머지 세세한 것은 각 시군 국정자문을 했고, 노인학교를 창설했으며 안으로 조상을 숭배하고 친족과 의의를 돈독히 했다. 부인은 함양 박씨이시고 장인은 임수씨이시니 병진년 四月 二十七日 출생하시여 정숙하시고 내조가 있으셨다. 길러진 바 남아는 형익 홍익 용익 재익 화익 손자는 계주, 계성, 계일, 계순, 계정, 계남, 계환, 계훈이다. 一九九八年 戊寅 一月 十日 오후 七時 十五分에 돌아가신 공과 一九九一年 十二月 十三日에 돌아가신 박씨와 계신 언덕이니라. 임실군 임실읍 두곡리 산 百十二番地 범당골 함께 술좌의 묘소이시다. 무릇 사람을 논함에 있어 그 덕을 논한 것이지 그 문을 가지고 논할 것이 아니다. 덕은 근본이 되고 문은 말단이 되니 사람을 취할때 그 의로움을 취한 것이지 그 지위를 취하지 아니한 것이니 의로운 것은 실체가 되고 지위란 것은 형상이 되는 것이다. 천하에 문과 지위가 있고, 덕과 의가 부족한 자는 소장부가 되는 이가 많느니라. 덕의는 있고 문과 지위가 부족한 자는 대장부가 되지 못하느니라. 아—아 장하도다. 만약 공같은 자가 밖으로는 부드럽고 안으로는 단단한 문명인이 되놈이니 어찌 물결따라 부침하는 자와 더불어 같은 날에 말할수 있겠는가. 속담에 이르기를 비단속에 쇠가 있는 것이니 오늘날 공을 위해 준비된 말인 것인즉 공의 四男 재익은 중후하고 질박하고 곧은 사람이요. 나의 글을 받기를 요구하였으나 덕성스런 문사를 구사하지 못하고 집안기록에 의지해서 이와같이 서술한다. 다만, 고라니와 사슴을 그리고 산림 성향을 그리지 못함을 부끄러 하노니 이로써 뒷날 붓을 잡는 군자의 채택됨을 기다린다. 임술 추 九月 중양절 전주 이형구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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